명칭은 사프란인데 많은 사람들은 샤프란이라고 부른다. 섬유유연제 상표가 더 유명해진 탓. 영어 발음은 sæfrən(새프런). 스페인어로는 azafrán(아사프란), 이탈리아어로는 zafferano(자페라노)로 표기해, 몇몇 라틴 계통 언어에서는 아예 z로 표기한다. 페르시아어 원어 발음을 살린 것.
레몬이나 코르크와 더불어 지중해 근처 남부 유럽에서 많이 자란다. 주로 향신료 목적으로 재배하지만 꽃 자체도 볼 만해서 관상용으로도 재배된다. 하지만 세계 사프란의 90% 가까이는 이란에서 재배된다. 왜 하필 이란이냐면 사프란 수확은 사람이 손수 해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비가 매우 싼 이란이 가장 적합한 것. 품질 자체는 스페인산이 가장 뛰어나다고 한다.
식물 자체는 독초이다. 독성이 크지 않고 향신료로 사용되어 위험할 정도로 많이 쓰지 않아 무시되지만, 추정 반수치사량이 대충 20g 이다.
사프란과 매우 비슷하게 생겨서 나도사프란(제피란테스 카리나타), 흰꽃나도사프란(제피란테스 칸디다)이라는 이름이 붙은 꽃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사프란과 달리 붓꽃과가 아닌 수선화과 제피란테스 속에 속하며, 각각 멕시코, 남미가 원산이다. 그래도 양쪽 다 아스파라거스목에 속하니 친척이긴 한 셈. 인간에 대입하면 인간-원숭이 정도의 차이라 보면 된다.
튀르키예의 유명 관광지이자 전통 마을인 사프란볼루(사프란 + 볼루)의 어원이 되기도 하였다. 볼루는 그리스어로 '도시'인 폴리스의 튀르키예 발음이다.
사프론 크로커스 꽃의 암술을 건조시켜 얻어내는데, 한 꽃에 3개의 암술밖에 없다. 1그램을 만들려면 500개의 암술대(위 사진에서 붉은 부분)를 건조시켜야 할 정도로 생산량이 적은데다 그 작업을 다 일일이 수작업으로 해야 하기 때문에 향신료 중에서 가장 비싸다. 다만 사프론 크로커스 자체는 번식도 굉장히 쉽고, 그만큼 싼 데다가 꽃을 키우기도 쉽다. 때문에 여름이 건조한 온대지방에선 특별한 관리 없이도 잘 자라지만 꽃송이마다 암술대를 일일이 핀셋으로 따내야 하므로 원가의 대부분은 인건비이다. 향신료 중에 단연 비싸서 두 번째로 비싼 바닐라의 10배 이상이다. 금 가격이 치솟는 바람에 위상은 많이 떨어졌지만, 과거엔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쌌던 향신료이다. 주요 원산지는 스페인으로, 이 전통으로 인해 스페인의 요리인 빠에야에 반드시 넣어야 하는 필수 향신료이다. 가정집에서는 육류나 생선을 부드럽게 하기 위해 재울 때(마리네이드) 종종 사용한다.
독초라는데 어째서 암술이 향신료로 쓰이는지 궁금할 수도 있겠으나, 식물은 조직에 따라서 독성이 다른 경우가 많아 생기는 일이다.
옷감에 천연 노란색을 낼 때의 염료로도 쓰이지만, 워낙 귀하고 비싸 색을 낼 용도로만 쓰려면 차라리 인공색소 쪽이 가격 대비로 훨씬 우수하기 때문에 1차 소비는 대개 향신료로 이루어진다. 스페인과 북부 이탈리아에서 쌀요리의 착색, 착향에 주로 쓰이고 프랑스에선 소스 재료로 사용한다. 가격이 부담스러우면 강황이나 치자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으나 착색효과는 비슷하여 향을 맡기 전까지는 잘 모르지만, 사프란을 먹어본 사람이거나 카레를 먹어본 사람이면 그 향을 단번에 구분할 수 있다.
여타의 향신료들이 그렇듯 사실 맛 자체는 무미(無味)거나 아주 아주 살짝 복잡한 맛이 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독특한 향이다. 사실 인간이 맛을 느끼는 데에는 맛 자체보다 향이 훨씬 중요하므로 향신료로서의 위상을 아직도 굳건히 지키고 있다.
향은 대체 불가한 정말 사프란 고유의 향으로서 트러플(송로버섯)이나 캐비어의 풍미처럼 다른 재료로는 절대 낼 수 없다.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가격이 비싼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향을 무조건 좋아한다고 보기는 어렵고, 살짝 내는 것과 많이 내는 것의 차이가 크다. 더군다나 트러플과 마찬가지로, 한국인이라면 사프란의 향이 별로 맘에 들지 않을 수 있으니 도전할 때는 주의하자.
옛날 대항해시대도 아니고 유통과 물류 시스템이 급격히 발달한 현대에도 이 정도 가격을 가진다는 것이 이 향신료의 위상을 알려준다. 지역과 유통과정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하지만 보통 20g짜리 한 통에 소매점 기준 17~20만원에 거래된다. 주력 생산국 중 하나인 스페인에서는 그램당 4~5유로 정도이다.
튀르키예에서 관광용 기념품으로 흔히 파는 5리라짜리 12종류 향신료팩에는 오레가노와 함께 사프란이 꼭 들어간다. 게다가 흥정을 잘 한다면 1리라 정도는 깎을 수도 있다. 2013년 기준 환율로는 1튀르키예 리라가 약 620원이니 꽤나 저렴하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은 '이 정도면 사프란 향도 충실하고, 소량만 넣어도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 관광지 향신료의 정체는 착색시킨 꽃의 수술이다. 향은 비슷하지만 암술에 비해 향의 수준이나 품질은 매우 떨어진다. 노란색은 잘 나오지만 향은 거의 없다. 싼 물건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참고로 한국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가는 튀르키예 북서부의 작은 마을 사프란볼루(Safranbolu)가 이 향신료의 특산지로 유명하다. 그리스어로 '사프란의 도시'라는 뜻의 사프람볼리(Σαφράμπολη)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됐을 정도인데, 사프란을 가지고 비누, 향수같은 기능성 제품이나 마을의 특산품인 로쿰에 사프란을 첨가한 상품도 팔고 있다. 그냥 사프란도 파는데 2016년 기준으로 그램당 3000원~4000원 꼴이다.
이란에서는 홍차를 우릴 때 사프란을 두세 개 넣고 함께 우리는데, 1L 남짓한 티포트에 사프란 꽃술 두세 개만 넣었는데도 사프란 특유의 향이 날 정도로 강하다. 건강에 좋다고 홍차 대신 그냥 사프란만 뜨거운 물에 우려먹기도 한다.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곁에 두고 싶은 향신료 중 하나로, 요리를 진지하게 취미로 두고 있는 사람이나 요리사인 지인이 있다면 선물용으로도 괜찮다. 아마 매우 좋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