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8월 31일부터 11월 9일에 걸쳐 영국 런던 이스트엔드 지역의 윤락가 화이트채플에서 매춘부 최소 5명을 갈기갈기 찢어 살해한 연쇄살인범으로, 일명 살인마 잭. 그가 저지른 화이트채플가의 연쇄살인은 오랫동안 연구의 대상이 된 유명한 미제 사건이다.
현재는 마지막 사건이 발생한 지도 132년이나 지났기에 범인 본인은 이미 오래 전에 사망했을 테니, 완벽한 영구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안 잡힌 이유 중엔 과학수사가 별로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였던데다, 찰스 워런이 워낙 수사를 부실하게 했던 탓이 있다. 오늘날이라면 아마 거의 100% 잡혔을 것이다.
잭 더 리퍼 사건의 배경을 살펴보려면 먼저 영국 산업혁명기의 병폐들을 알아보아야 한다.
19세기 영국은 산업혁명과 의료기술 발달, 농업기술 발달의 결과로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였다. 1851년에 영국 인구는 1,680만 명이었지만, 1901년에는 3천만 명으로 늘었을 정도인데, 당대에 영국이 수많은 식민지를 차지하여 많은 이들이 기회를 찾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인도, 남아공, 탄자니아, 나이지리아, 홍콩 등의 식민지로 이주한데다가 또한 적지 않은 영국인들이 미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의 아메리카 국가로 이주했음에도 영국 본토의 인구만으로도 엄청난 인구성장세가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이처럼 늘어난 인구는 산업혁명기에는 쉽게 대체 가능한 잉여노동력이 늘어났다는 뜻이기도 했다.
노동환경은 열악하고 대체인력 수급은 쉬우니, 당연히 고용주들은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영국의 하층 여성들은 같은 계층 남성들보다 더 혹독한 현실에 부딪혀야 했다. 예를 들어, 1890년 기준으로 영국의 말단 하녀가 12시간 매일 일하고 받은 연봉은 13파운드 정도였는데, 현재 기준으로 환산하면 1,300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140만 원이 조금 넘는다. 결국 여성들이 기존에 버는 돈으로는 도저히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기에, 이는 여성들이 매춘을 부업 또는 전업으로 삼는 큰 요인이 되었다. 잭 더 리퍼의 희생자들을 통해 그 일면을 어느 정도 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이드는 스웨덴에서 지주의 집 하녀로 일하다가 식모 일을 하러 런던으로 이주하였으나 매춘에 발을 들였고, 애니 채프먼은 때때로 하녀 일을 하거나 뜨개질을 하여 돈을 벌었으나 수입이 부족하여 매춘으로 생활비를 벌충했다.
게다가 여성의 성비는 1851년 통계에 의하면 50만에서 100만 명 정도로, 남성보다 더 많았다. 당시 남성이 여성보다 수가 적었던 이유는, 현재도 그렇지만 과거에도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높았고, 산업혁명이 시작되며 생겨난 공장들에서 일어난 사고의 사망자들이 남성이었기 때문이다. 또, 당시 영국의 식민지가 전세계에 광범위하게 분포되어 있어서 식민지 지역으로의 이주가 활발히 진행된데다가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 일대로 이주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남성 이민자들이 더 많았다. 주둔군으로 파견된 남자들이 현지 주민들과 빈번히 통혼하고, 7년 전쟁, 미국 독립 전쟁, 나폴레옹 전쟁, 미영전쟁, 아편전쟁 등 대규모 전쟁들이 빈번하게 일어나 징발된 남자들이 전투나 풍토병으로 죽자, 미혼 여성의 숫자는 더욱 늘어났다.
25세에서 40세 사이 여성 중 15% 이상이 결혼을 할 수 없었다. 남성의 경제권이 강하던 시대에 여성의 경제적 지위 하락으로 이어지는 문제였다. 이렇게 노동과 결혼에서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소외됨으로써 영국의 매춘부 수는 폭증하였다. 당시 계간지였던 The Westminister Review에서 추산한 영국 전체의 매춘부 숫자는 5만 명에서 36만 8천 명이었다. 이 통계수치가 맞다면, 매춘은 영국 여성의 직종들 중 4번째로 흔했다. 잭 더 리퍼 사건이 첫 발생한 1888년, 영국 경찰이 파악한 런던의 매춘부 수는 5,678명이었고, 영국과 웨일스 전체에서는 2만 4,311명이라고 한다. 또한 1888년 10월 잭 더 리퍼 사건이 벌어지는 중 사건의 배경이 된 화이트채플에서 공식적으로 경찰이 집계한 매춘부의 숫자는 1,200명이었다. 하지만 통계수치마다 숫자가 모두 다르고, 경찰이 집계한 숫자는 부족한 당시 치안력으로 파악한 최소치임을 감안하면, 실제 매춘부의 숫자는 경찰의 파악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경찰이 확실히 집계한 숫자로 한정하여 생각해도, 런던 전체에서 화이트채플의 매춘부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컸다. 잭 더 리퍼 사건의 희생자들 대부분은 결혼하였어도 남편과 사별하거나 헤어져서 안정적인 생계 유지가 어려워진 여인들이다. 즉 실패한 결혼생활이 이들을 생활전선으로 내몰았고, 복지정책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당시 영국 사회에서 희생자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것은 매춘이었다.
사건의 배경이었던 화이트채플은 그 중에서도 매춘으로 악명 높은 곳이었고, 이미 유대인, 아일랜드인, 기타 외국인들이 모여들어서 사회 혼란의 진원지가 되고 있었던 곳이다. 잭 더 리퍼에게 희생당한 5명의 피해자들 중 2명이 잉글랜드 본토 출신이 아닌 외지인이었다는 것에서도 이 점을 엿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이드가 스웨덴 출신, 메리 제인 켈리가 아일랜드 출신이었다. 사회적 약자 중의 약자였던 매춘부들은 잭 더 리퍼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도 범죄의 표적이 되어 살해당하거나 갱단으로부터 보호비 명목으로 돈을 갈취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춘부들은 제대로 된 치안의 보호를 받지 못함이 현실이었다.
전술했듯 잭 더 리퍼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1888년 초중순에도 많은 매춘부들이 길 한복판에서 살해당했지만,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내지 못했다. 다만 살해 수법을 보았을 때 잭 더 리퍼 사건의 피해자는 아닌 것으로 여겨진다. 게다가 당시 매춘부들의 절망적인 생활 패턴이 맞물려 매춘부들은 잭 더 리퍼 같은 살인자들에게 손 쉬운 표적이 되었다. 매춘부들은 당시 빠른 성행위에 4펜스 남짓 푼돈을 받았고, 그 돈으로 그날 먹을 비스킷과 진을 사면 숙박비를 구할 수 없어 노숙하거나, 영국의 하층민들이 이용한 2펜스 정도의 푼돈을 내고 벽가에 설치된 긴 벤치에 서로 붙어앉아 자는, Two Penny hangover라는 간이 숙박시설 등을 써야 했다. 이건 말이 숙박이지, 그냥 달랑 야외 혹은 지붕만 있는 실내에 의자 하나와 자다가 앞으로 넘어지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벽에 걸려 있는 기대는 긴 밧줄에 기대어서 자는 준 노숙으로, 아침이 되면 주인이 밧줄을 풀어서 깨워 주었다.
심지어 Penny sit-up이라고, 반값이지만 대신 기댈 밧줄도 없고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서 자야 하는 곳도 있었다. 숙박비를 벌지 못한 많은 매춘부들이 이런 식으로 잠을 자야 했다. 19세기 말부터 1900년 무렵 런던의 가장 저렴한 숙박업소에서 침대 하나를 하룻밤 빌리는 데 지불해야 하는 가격은 4펜스에서 6펜스 남짓이었다. 매춘부들이 한 번의 야외 매춘으로 번 돈은 개인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2펜스에서 4펜스 정도였다. 이러한 시세의 영향으로 당시 퍼진 속어가 twopennies upright, 2페니를 주고 담벼락에 기대 선 채로 매춘부와 하는 성관계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야외에서 적당히 으슥한 곳에 가서 유방과 성기 정도만 노출하고 잽싸게 끝내는 착의섹스로, 저렴한 만큼 질도 낮은 서비스이다. 이때 영국 화폐는 1파운드가 240펜스였던 때였다. 1889년 기준으로 1파운드는 현재의 15만 원이 조금 넘는다. 그렇게 따지면 4펜스는 지금의 2,600원 정도 가격이다. 그리고 당시 매춘부들이 물처럼 마시던 진 1잔은 3펜스 정도였다.
살해당한 5명 중 4명이 모두 새벽에 손님을 구하다가 목숨을 잃었고, 마지막 희생자는 살해당할까 두려워 집 안에 머물렀지만 결국 자기 집 안에서 살해당했다. 야간에 조용한 장소에서 손님을 만나야 하는 매춘부들의 직업 특성상, 잭 더 리퍼에게 있어서는 손쉬운 살해조건이 널린 것이다.
결국 잭 더 리퍼 사건은 영국 산업혁명기의 열악한 노동 조건, 노동과 결혼에서 소외된 여성들의 매춘 문제와 한 미치광이 살인마의 광기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희생자는 모두 매춘부였고, 범행장소는 공공장소 혹은 그에 가까운 장소 등 야경꾼이나 행인이 지나갈 수 있는 장소가 많았다. 범인의 대담성과 계획성을 보여주는 항목이며, 때문에 범인의 대략적인 인상을 말한 증인도 있다.
살해수법의 특징은, 칼로 살해한 후 '외과 수술용 칼' 같은 예리한 날붙이'로 시신을 해부했다는 점이다. 이래서 널리 알려지게 된 이름이 Jack the Ripper가 된 것. 직접적인 사인은 대개 목에 가해진 자상 또는 교살이었고, 주로 훼손된 부분은 복부와 내장, 얼굴이었다. 이런 범죄치고는 특이하게도 무릎을 꼭 붙인 채 사망한 희생자도 있었다. 여성의 생식기를 절개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범인이 일반적인 성행위에는 흥미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사실.
해부학 지식이 상당했던 듯하다. 한밤중에 조명도 없는 곳에서 캐서린 에도우즈의 신장을 적출했다는 점, 게다가 신장은 막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데도 적출해냈다는 점에서 부검의들 일부는 '범인이 상당한 외과적 기술이 있는 것이 아닐까.' 추측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범인이 해부학적 지식이 있는 의사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는데, 한편으론 "전문 의사의 솜씨로 보기에는 조금 조잡하다"며 "(그 당시에) 취미 생활로 사냥과 사냥감 해체를 자주하던 상류층 남성"이라는 반론도 있었다.
캐서린 에도우즈가 살해되기 직전, 에도우즈를 목격한 증인(조지 허드슨)의 말에 따르면 "상당히 깔끔하고 번듯해 보이는 차림의 남자와 대화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 자와 만나고 얼마 지나 캐서린의 시체가 발견되었으므로 이 자가 바로 잭 더 리퍼일 가능성이 높으며, 상류층 출신일 가능성도 높다.
또한 정신에 상당한 문제가 있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그의 범행은 일반적인 살인자와 달리 증거를 많이 노출한 데다가, 너무나 참혹하고 잔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잭 더 리퍼가 '매춘부'라는 대상에 비정상적인 증오를 품은 인간이 아닌가 하는 분석도 나왔다.
어떤 사람이 그인지 모르기에 다양한 인물이 용의자로 올라갔다. 용의자로 오른 인물은 의사부터 공작 나으리까지 다채롭고, 그 외에도 작가 루이스 캐럴, 화가 월터 시콧 등 다양한 인물들이 용의자 후보로 올라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잭 더 리퍼 용의자로 지목되어 곤욕을 치렀으며, "영국인이 이런 짓을 할 리가 없다"며 유대인과 외국인이 의심받기도 했다.
시대 배경이 딱 셜록 홈즈 시리즈와 맞아 떨어지고, 이는 즉 실제 작가인 코난 도일이 살던 동시대의 일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코난 도일은 그를 소설에 등장시키지 않았다.
영국 경찰이, 잭 더 리퍼가 하도 안 잡히다 보니 실제로 코난 도일에게도 의뢰를 했지만 그래도 잡지 못한 일이 있었다는 말이 있다. 사실이라면 자신도 잡지 못한 인물을 언급하고 싶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홈즈 소설에 잭 더 리퍼가 등장하고, 홈즈가 특정인을 잭 더 리퍼로 추리했다가 다른 놈이 잭 더 리퍼라고 밝혀지면 홈즈는 놈에게 속아넘어간 허당 탐정이 되고 만다! 이런 걸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므로 코난 도일의 처사는 매우 현명했다.
그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 봐도 이게 옳은 것이, 책을 연재하던 시기와 이 사건이 일어난 시기가 거의 겹친다. 실시간으로 피해자가 생기는 사건을 책 인기 끌자고 넣었다가 유족들에게 어떤 상처를 줄지 생각해보면 설령 범인이 잡혀 정체가 드러났다 할지라도 넣지 않는 것이 옳은 결정이다. 또한 홈즈 시리즈의 추리 콘셉트에는 연쇄 살인자라는 소재가 맞지 않기 때문에 작품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넣지 않은 것이 현명한 결정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코난 도일 본인은 인터뷰에서 잭 더 리퍼의 정체에 대해 추리했었다. 코난 도일은 잭 더 리퍼가 보낸 편지에 fix it up 등 영국에서는 쓰이지 않는 표현이 많아 그런 말들이 자주 쓰이는 미국 출신이나 미국에서 살던 사람일 거라고 추리했고, 미국과 영국의 신문사에 잭 더 리퍼의 편지를 공개해서 그 필체를 아는 사람들의 제보를 통해 추적해야 된다고 얘기했다.
코난 도일은 잭 더 리퍼가 여장남자였을 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거다. 명탐정 코난 극장판 베이커가의 망령에서 이 설정을 적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