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최대의 상업은행이자 투자은행. 이웃국가 스위스의 크레디트스위스, UBS와 더불어 세계구급으로 활동하는 금융시장의 큰 손 (일명 "벌지 브래킷")으로 꼽힌다.
도이체방크, 즉 독일은행이라는 이름에서 한국은행과 비슷한 이미지가 연상되기 때문에 중앙은행으로 햇갈리기 딱 좋게 생겼다. 하지만 독일의 중앙은행은 독일연방은행(도이체 분데스방크: Deutsche Bundesbank)이며, 독일에서 사용되는 유로화를 발권하는 은행은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유럽중앙은행이다. 유로로 송금받으면 도이체방크를 거쳐서 자금이 이체되기도 한다.
독일어로는 도이체 방크라고 발음한다.
1870년 독일 베를린에서 지멘스의 설립자인 베르너 폰 지멘스, 변호사인 아델베르트 델브뤼크, 경제학자인 루트비히 밤베르거가 주축이 되어 무역은행으로서 설립되었으며 같은 해 프로이센 당국으로부터 승인받았다. 곧 독일의 무역 중심지인 브레멘과 함부르크에 첫 독일 내 지점을 개설하였고 상하이와 런던에 해외 지점을 두었다. 초기에는 미국의 노던 퍼시픽 레일웨이와 이스탄불에서 바그다드로 이어지는 철도 건설에 투자하였고 독일 철강회사인 크루프의 채권을 발행해주고 화학제약사 바이어의 주식시장 상장을 도왔다. 초기의 투자와 금융 전략이 크게 성공하고 독일 국내의 여러 소규모 은행들을 인수합병하면서 독보적인 은행으로 발돋음하였다.
그러나 나치 집권 시기인 1933년 나치의 아리안화 정책에 따라 유태계 임원 및 직원을 모두 해고하고 유태인들의 사업과 자산을 몰수하는데 앞장 서는 등 나치에 협력하였다. 홀로코스트에도 관여한 것이 확인되어 전후 공식 사과 성명을 내놓고 피해자들에게 52억 달러를 배상하였다. 이후 연합군에 의해 3개 은행으로 쪼개졌다가 다시 합쳐져서 오늘날의 Deutsche Bank AG가 되었고 본사도 프랑크푸르트로 이전하였다.
국내에서는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부실화로 곤경을 겪던 서울은행의 경영을 위탁받기도 했었다. KB국민은행장을 역임한 강정원이 바로 도이체방크 서울지점 대표이자 서울은행장을 지냈다. 2001년 9.11 테러 당시 월스트리트에 위치했던 뉴욕지점 건물은 세계무역센터의 잔해에 맞아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대파됐고 결국 철거 후 재건축했다.
2016년 들어 휘청휘청하면서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세계금융위기를 연상시키듯 '제2의 리먼'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독일 정부의 결정에 따라 그리스에 대한 구제금융을 한다고 그리스 국채를 대량으로 매입하고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휘청대면서 해당 국가 국채를 많이 소유한 도이체방크의 신용도에 금이 갔었다. 독일 현지에서는 신규 계좌 개설은 줄어들고 계좌 해지나 다른 은행으로 이동하는 고객이 대량으로 늘었다는 루머가 돌기도 하였다. 한때 독일 2위 은행인 코메르츠방크와의 합병이 논의되다가 2019년 4월 결국 도이체방크 CEO가 합병 결렬을 발표했다.
2019년 7월 실적 부진으로 직원의 20%인 최대 2만 명을 감원하고 740억 유로에 달하는 자산을 매각하기로 했는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금융 기업의 구조조정 규모로는 세계 최대다. 감축되는 대부분의 직원들은 해외 지부에서 투자 관련 업무를 받던 인력들이 대부분이며 도이체방크는 개인 고객을 위한 은행 업무에 집중하겠다고 발표하였다.
2020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홈구장의 명명권 계약을 맺었고 경기장은 도이체 방크 파르크로 이름이 변경되었다.